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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추천영화 '사도'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진실/줄거리,결말

by T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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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도'의 배경은 1762년 7월 부왕인 영조는 차기 왕인 이선을 폐위하고 사도세자가 뒤주에 8일동안 갇혀서 점차 의식을 잃어가며 죽는 임오화변을 시간으로 진행하면서 사도세자의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영조와의 관계가 틀어지고 뒤주에 갇혀 죽기까지의 상황을 동시에 그려내고 있습니다.

 

끔찍한 재앙은 찌는 듯한 삼복더위 중에 발생했으며, 충격적인 사건이기에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이 일은 학술적으로도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으며, 임오화변은 너무나 익숙한 소재이기 때문에 사도가 뒤주에 갇히는 장면을 앞부분에 배치하고, 왜 사도가 뒤주에 갇혔고 부자 사이가 틀어질 수 밖에 없었는지에 집중하려고 한 영화입니다.

 

이 글은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감독

이준익

 

출연

송강호, 유아인, 문근영 외

 

장르

사극, 드라마

 

개봉일

2015년 9월 16일

 

국내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를 소개하기 앞서 OST 얘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 메인 테마는 방준석 음악감독이 피리, 생황의 소리를 넣어 작업한 곡으로, 영화의 슬픈 분위기를 살려주었고, 방준석이 작업한 OST는 전체적으로 평가가 좋아 청룡영화상 등에서 음악상을 수상했으며, 영화를 보는 내내 음악이 영화와 너무 찰떡궁합이라 '사도'라는 영화를 더욱 빛날수있게 해주었던것같습니다. 

 

영화 '사도'는 넷플릭스, 왓챠에서 모두 볼수있으며 아버지와 아들의 비극을 다룬 내용으로 부모의 기대와 욕심으로 인해 자식의 인생을 망치고, 지나친 관여로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할수없게 만드는 안타까운 현실과 닮아있는 부모의 모습을 영조를 통해 다시한번 깨달으며 가슴아팠던 영화였습니다. 

 

역시 배우들의 연기가 매우 뛰어났고, 유아인은 세자 그 자체였다라는 평가에 저 또한 공감하며, 송강호는 영조의 늙고 허스키한 목소리를 위해 목을 혹사했다고 스스로 밝혔었는데 극중 영조와 너무 잘 어울렸던것같습니다. 

 

결말 포함 줄거리

 

영조의 나이 마흔둘, 고령에 얻은 귀한 아들 사도세자 이선이 1735년 2월 13일, 음력 1월 21일 태어납니다.

 

영조는 당시 장남 효장세자를 7년전 잃었고, 이후 다른 아들을 두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후궁 영빈 이씨의 사이에서 막내아들이자 장남으로 태어난 이선은 태어났을 당시에 매우 기뻐했다고합니다.

 

영조는 이선이 태어난 즉히 정성왕후 서씨의 양자로 공식 입적한 후 원자로 정했고, 이듬해인 1736년, 이제 막 돌이 지난 이선을 왕세자로 책봉하기까지 하게되며 이때부터 비극이 시작됩니다. 

 

영조는 이선이 읽을 책을 자신이 직접 밤을 세어가며 필사했고, 이선이 성균관에 입학하자, 성균관 탕평비도 특별히 제작했습니다.

 

 

이선은 밥을 먹던 중 영조가 말을 걸자, 입에 있는 밥을 전부 뱉고 답하며 '소학에서 부모가 부르실 때에는 입에 있는 걸 뱉고 말하는게 효라고 배웠다"고 답했고, 7달에 동서남북을 구분하고, 2살때 천자문을 배워 60여자를 써냈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영민함으로 아버지의 자랑이자 기쁨이었던 이선에 대해 기대감이 컸던 영조는 이선의 나이 열 살을 전후해 영조의 태도는 엄격하다 못해 혹독했으며, 이선은 영조를 두려워해 아는 것도 잘 대답하지 못했고, 이에 영조는 더 이선을 거칠게 비난하고, 질책했습니다. 

 

 

'한중록'에서 1743년 9월 세자는 어지럼증을 호소하기 시작하지만 영조는 공부하기 싫어서 하는 꾀병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결국 보다 못한 신하들이 "잘 하는 세자를 왜 못살게 구냐"며 영조에게 항의했지만, 영조는 막무가내였습니다.


아들 이선은 학문보다는 그림 그리기와 무예가 글 읽기보다 좋았고, 성격도 자유분방해 원리·원칙을 고수하는 아버지의 성향과는 차이가 있었고 식탐이 많아 몸이 비대했지만, 아버지의 마음에 들기 위해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아닌 '군주'로서, 자신을 대하는 아버지 영조의 눈에는 늘 모자란 자식일 뿐이었습니다. 

 

영조는 재위기간 내내 왕위 정통성 논란에 시달리며 권력 투쟁 와중 숱한 죽음의 고비를 넘겼으며 왕으로서 책임감이 얼마나 무거운지 절실히 실감하고 있었고, 신하들에게 책잡히지 않고, 잡음을 잠재우기 위해 강박적으로까지 공부와 강론을 게을리 하지않고 모든 부분에 있어 완벽해지도록 끊임없이 노력했으며 경연에서도 신하들의 말문을 막을 정도의 학식을 가졌사람입니다. 

 

툭하면 반역 모의가 나오고, 역모죄로 잡힌 죄인들은 대놓고 영조에게 경종을 독살한 범인이라고 우기는가 하면 천한 무수리 최씨의 자식이 어떻게 왕이 되냐며 비난받기도 합니다.

 
 
 
 


이처럼 공부에 힘을 써야 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공부에 싫증을 느끼고 취미생활에 빠지자 조바심에 계속해서 가혹하게 훈계를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끝이 없을 정도로 옷 매무새 하나까지 신하들 앞에서 엄히 꾸짖으니 세자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며 서로 오해와 갈등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영조는 모든 재수 없는 일은 아들 탓으로 돌렸는데, 가뭄이 지면 세자가 덕이 없는 까닭이었고, 홍수가 발생해도 세자가 부족해 그러하다 했습니다.

 

이에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고 다그치기만 하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커지면서 세자의 가슴에는 울화가 쌓였습니다.

 
 
 
 

 

세자가 어느덧 청년이 되자 영조는, 틈만 나면 "양위하겠다"라는 등의 얘기를 꺼내며 양위선언(군주가 왕의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을 무려 5번이나 합니다.

 

이는 진짜 마음이 있는 게 아니라 세자의 반응과 신하들의 충성심을 떠보기 위한 테스트였으며 영조가 양위 선언을 할때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사도세자는 석고대죄(스스로 지은 죄에 책임을 지고 대문이나 궁문 아래에 거적을 깔고 벌주기를 기다리는 행위)를 해야했습니다.

 

이선은 조선에서 가장 석고대죄를 많이 한 인물로 추정됩니다. 

 

 

대리청정

 

그러다 이선은 영조로 부터 정치적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이유로 대리청정을 맡게 된 순간부터 아버지와 관계는 본격적으로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영조는 신하들이 다 보는 앞에서 세자의 발언 하나하나에 지적을 해서 기를 죽이며, 책망하고 질책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결정하면 영조가 뒤에서 그걸 왜 네 마음대로 결정하냐며 트집을 잡고,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면 그것 하나 제대로 못하니 대리 시킨 보람이 없다며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이선 뒤에 앉아 영조가 일을 처리해버립니다. 

 

심지어 이선이 18세가 되던해 궐내에 홍역이 돌아 이선 역시 홍역을 앓았는데, 영조는 "대리청정을 잘못했다"며 이선을 몰아붙였고, 결국 이선은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3일 간 눈을 맞으며 석고대죄를 했다고 합니다.

 

 

이후 그나마 이선을 챙겼던 할머니 인원왕후와, 어머니 정성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이선은 미쳐버리게 됩니다.

 

상을 치르는 와중에도 인원왕후가 죽은 걸 영조는 세자의 탓으로 돌리고, 세자도 참다못해 온갖 기행을 벌이게 됩니다.

 

 

영화에서는 잘 묘사되지 않은 기행

 

영화에서 이선의 기행은 심의문제 때문인지 많이 묘사되지 않았는데 기록에 따르면 그가 죽인 이가 거의 100명에 달할정도로 연쇄x인을 했다고 전하고 있으며, 무수히 많은 무고한 사람을 죽였으며 스스로를 망가뜨립니다.

 

 

 

이선은 실제 18세의 나이때 본격적으로 광증이 드러나게 되는데, 환각증세를 극복하기 위해 악귀를 쫓을 때 읽는 경문인 '옥추경'을 읽었는데 내용중 '뇌성보화천존'이라는 신이 나오는데 그 신이 실제로 보이는 더 충격적인 신경증을 앓게 되었으며, 천둥이 칠때 불안 증세 등 더 심각해 집니다.

 

엄격한 금주령을 발표했었던 영조는 이선의 흐트러진 몰골을 보고 술을 마셨다는 오해를 하게 되면서 둘의 사이는 더욱 악화되며, 이선은 관을짜서 들어가있거나, 땅에 구덩이를 파서 각종 무기를 넣고 하루종일 안에 있거나, 자기자신을 파괴하는 죽음의 욕구를 표현하게 됩니다. 

 

22살때 부터 "의대(왕이나 세자, 왕비, 세자빈들이 입는 옷을 높여서 보르는 말)증"이라는 병에 시달렸는데, 옷을 입지못하고 20-30벌씩 갈아입거나, 다 찢어버리거나, 귀신이 씌였다며 옷을 불태워버리기도 했습니다.

 

 

용포를 입을때마다 광적으로 발작을 일으켰고,  아버지를 만나러 가야하는 압박감때문에 생겼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으며, 내관, 궁녀들이 옷을 입히다가 이선의 손에 죽었고, 혜경궁 홍씨는 세자가 던진 바둑판에 눈이 뽑힐뻔하기도 했으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사치하느라 국고를 탕진한 것과 그가 저지른 악행은 폭행과 살인 뿐 아니라 궁녀나 비구니에 대한 성x행도 있었는데, 영화에서는 많은 부분들이 생략되었습니다.

 

의대증이 심했던 날 사도세자는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쟁취했던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후궁 빙애마저 때려서 죽였고, 아들 은전군을 연못에 던져 대신들이 건져올리게됩니다.

 

 

혜경궁 홍씨는 이때부터 자신과 아들도 죽일수있다는 불안감에 시어머니 영빈 이씨에게 이 사실을 알립니다. 

 

입만 열면 세손얘기만 하는 혜경궁 홍씨에게 자네 눈엔 내가 안보이냐고 하소연하거나, 며느리(세손빈)에게 "부부란, 서로의 실수를 덮어주고, 사소한 예법에 얽매이지 않으며,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끝없이 사랑하는 것이니라."라고 얘기한 것을 보면, 세자는 아내에게도 의지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선 "병의 증세가 더욱 심해져서 병이 발작할 때에는 궁비와 환시를 죽이고, 죽인 후에는 문득 후회하곤 하였다"고 나옵니다.

 

 
 


활터에서 정조와 이선의 대화에서 일부러 화살을 허공에 날리며 "허공으로 날아간 저 화살이 얼마나 떳떳하냐."고 하는 장면은 참으로 가슴이 아팠습니다. 

 

 

폭발한 세자는 상복을 입고 측근들과 함께 부왕을 죽이러 경희궁으로 향하지만 영조와 대화하는 세손의 이야기를 듣고 들고 있던 칼을 내려놓습니다.

 

영조와의 대담에서 영조가 사도세자가 영빈 이씨의 환갑 잔치에서 사배를 할 것을 정조가 받아 들인 점을 지적하자, 자신은 할아버지(영조)가 왕이 아니더라도 그 이상의 대접을 할 수 있다며 "사람이 있고 예법이 있는 것이지, 어떻게 예법이 있고 사람이 있겠습니까. 공자께서도 예법의 말단을 보지 말고, 그 마음을 보라 하였습니다. 그날 소손은 제 아비의 마음을 보았나이다" 라며 아버지(사도세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발언을 합니다.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한 세자가 "아무리(누군가를 해치겠다)라도 해야겠다"는 해서는 안될 말을 자주한데 대해 영조의 목에 칼을 겨누게 될까 두려워 영조를 찾아가 영조의 안위와 종묘사직을 위해 아들을 처분하라고 고합니다. 

 

결국 1762년 5월 임오화변이 일어납니다.

 

영조의 자결하라는 명에 사도세자가 돌에 머리를 박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은 원래 돌에 스펀지를 덧대고 그 위에 유아인이 머리를 박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스펀지가 너무 작아 실제로 돌바닥에 머리를 박았고 극 중 머리를 박은 후에 사도세자의 이마에서 흐르는 피에는 진짜 유아인의 피가 섞여 있었다고 합니다.

 

유아인은 부상을 당했음에도 씬을 끊지 않고 계속 연기하고 있어서 스태프들은 정황을 모르고 있었지만, 현장에서 모니터하고 있던 송강호가 알아채 바로 응급처치를 하고 분장을 해서 촬영을 계속 진행했다고 합니다.

 

칼자루를 내던지면서 "자결하라"라고 하지만 세자는 이런 법도가 어디 있느냐, 언제부터 날 아들로 여겼냐고 거부합니다.

 
 
 

신하들도 이 참상을 보다못해 몸을 던져가면서까지 말리지만 영조는 그런 신하들마저 모두 내쫒고 세자를 뒤주에 가두고 직접 못질까지 합니다.

 

뒤주에 갇힌 이유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줄 생각이 추호도 없었고, 세자에게 사약을 주거나 참형을 하면 역적이 되기 때문에 세손 뿐 아니라 자신의 정통성에도 타격을주기에,  "처형이 아닌 형태로 사도세자가 세자의 신분을 유지한 상태에서 사망" 즉 세자가 스스로 자결해 "세자인 상태"에서 죽는다면, 이미 국정을 돌보는 것이 불가능해져버린 상태의 세자에게 보위를 주지 않고 손자에게 보위를 주는 것이 둘 다 가능했기때문에 자결을 종용했지만, 자결을 거부하자 다른방법을 찾은것으로 보입니다. 

 

뒤주에 갇힌 세자에게 실제로 신하들은 초반에 "설마 죽이기까지 하겠냐"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컸으며, 몰래 음식과 물도 줬으며, 틈새로 미음을 주기도 했지만 후반에는 밀랍으로 봉해버렸다고 합니다.  

 

뒤주에 다시 들어갔을 때는 세손 탄생 시 자신이 그린 부채 그림을 보고 세자는 비로소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깨닫게됩니다.

 

영화에서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둔 후 7일 째 밤, 사경을 헤매는 사도세자와 진심어린 속 얘기를 하면서 아버지로서의 정을 드러냅니다.

 

영조는 자신이 세자를 엄하게 키울 수 밖에 없는 이유, 군주와 후계자로서의 법도와 자신의 기대에 어긋나는 세자를 보면서 얻은 실망이 사랑을 미움으로 변하게 하였다며 자신의 진심을 토로하지만, 자신이 원했던 것은 아버지의 따뜻한 눈빛과 말 한 마디였다는 세자의 진심을 듣고 왜 우리는 마지막에서야 서로의 진심을 알았냐면서 한탄합니다. 

그 후 세자가 뒤주에서 숨을 거두자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숨과 맥박을 짚어본 뒤 얼굴을 어루만지며 소리 죽여 오열하면서도 명분상 폐서인된 역절을 처단한 것이기에 환궁하면서 개선가를 울리고, 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데 일조했던 김상로를 비롯한 다른 대신들마저 "독하구먼. 자식 죽이고 개선가라니......"라며 씁쓸해 합니다.

 

세자가 죽은 뒤 "자식 잡아먹은 에미가 살아서 뭐해. 내 무덤엔 풀도 안 날거야."라며 혜경궁 홍씨에게 '내가 죽인 게 아니지?'라며 통곡하는 장면은 결국 자기 아들을 죽게 만든 어머니의 죄책감과 슬픔을 보여줍니다.

 

극중 영조는 정말 죽은 아들을 생각하며(思) 슬퍼하는 의미로(悼) 시호를 내렸고, 실제로 영조는 사도세자를 남들이 다 꺼리는 흉지에다 매장했습니다.

 

 

 
 

결말

 

아버지였던 이선이 정조가 태어난 날 꿈에 나온 용을 그린 그림으로 만든 부채를 들고 춤사위를 보이며 아버지 사도세자와의 추억을 회상하는듯 활시위를 당기는 자세를 취한 뒤 복받치는 감정을 갈무리하기 위해 부채로 얼굴을 가리는 엔딩 장면은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이지만 저는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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