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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 찬미" 넷플릭스 추천 /비극적 사랑 실화 윤심덕♥김우진

by T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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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배우 이종석과 신혜선이 주연을 맡은 SBS 드라마 ‘사의 찬미’는  두 배우가 연기한 캐릭터들이 실제 인물인 김우진과 윤심덕의 실화를 바탕으로 창작된 내용이기 때문에 당시 더욱 주목받으며 당시 실제 인물에 대한 관심도 높았습니다. 

이 글은 스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사의 찬미는 오래전에 봤던 드라마였는데 넷플릭스에 있어서 다시 한번 더 보면서 실제인물들의 삶까지 알아보면서 리뷰했습니다.

6부작으로 구성된 ‘사의 찬미’는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신혜선)과 그의 애인이자 천재 극작가인 김우진(이종석)의 일화를 그린 작품으로 윤심덕과 김우진을 맡은 신혜선과 이종석은 섬세한 감정 연기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윤심덕과 김우진은 연인이었고 바다에 함께 몸을 던진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들이었습니다.

 

 

방송 기간

2018년 11월 27일 ~ 2018년 12월 4일

 

방송 횟수 

6부작

 

제작

더스토리웍스

 

출연

이종석, 신혜선, 이지훈

 

제작 

이영준, 이힘찬

 

연출

박수진

 

극본

조수진

 

시청등급 

15세 이상

 

 

이종석이 드라마 '사의 찬미'에 노개런티로 출연한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윤심덕의 대표곡 ‘사의 찬미’는 영화 ‘해어화’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사의 찬미’에 그려진 대로 윤심덕은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에서 성악을 전공했으며, 순회극단에 참여하면서 선구적 극작가이자 최초로 신극운동을 일으킨 연극운동가 김우진과 알게 되면서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순탄하지 못했고, 마지막 회에서는 김우진(이종석)과 윤심덕(신혜선)은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슬퍼한 나머지 동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배에 오르기 전 김우진은 신곡 집필을 마무리했고, 윤심덕은 '사의 찬미' 녹음을 마쳤으며, 두 사람은 배 갑판 위에서 마지막 춤을 추고 사라지는 모습을 그리며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했습니다.

드라마로 인해 실존 인물인 윤심덕과 김우진의 러브스토리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습니다. 

 

 

‘사의 찬미’, 실제 인물 김우진-윤심덕 누구인가?  

 

윤심덕은 1897∼1926. 경성 여자고등 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하였으며, 강원도 원주에서 1년여 동안 소학교 교원을 한 뒤 관비유학생으로 일본 도쿄 음악학교 성악과에서 수업받았습니다.

 

윤심덕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로 데뷔하며, 서울에서 열리는 모든 음악회 프로에는 항상 윤심덕을 넣을 만큼 일약 스타가 되었지만, 오페라 가수를 꿈꾸었던 그녀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대중가요를 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1920년대 한국 최초의 여성 성악가 윤심덕은 신식 교육을 받은 신여성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조선총독부에서 뽑는 관비 유학생으로 발탁되어 일본으로 소프라노 유학을 갔으며, 김우진은 전라도 지역 갑부의 아들로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를 한 재원이었습니다. 

 

김우진

 

1921년 윤심덕은 유학생들과 만든 동우회의 조선 순회공연에 참가해 김우진을 처음 만나게 되고, 두 달 순회공연을 통해 친밀해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1924년 윤심덕은 일본에서 학업을 마치고 돌아와 음악 무도대회에서 독창 공연을 시작으로 성악가로서 활동을 시작하며 한국인 최초의 소프라노로써 명성을 쌓기 시작했지만, 경제적으로 항상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결혼이 파투 나기도 하는 등의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1926년 윤심덕은 음반을 녹음하기 위해 오사카에 있는 닛토 레코드사에 가게 외면서 일본에서 극적으로 재회하게 됩니다.

드라마 ‘사의 찬미’에서는 그려지지 않았지만 실제로 김우진은 집안에서 맺어준 부인과 자녀가 있는 유부남이지만, 이후 일본 유학 중 만난 윤심덕을 만나 사랑에 빠진 것으로 알려지며 '세기의 불륜'이라고 불리며 정국을 뒤흔들었습니다.

1926년 8월 3일 일본에서 만난 윤식 덤과 김우진은 부산행 부관연락선에 함께 탑승했지만 하루 뒤인 4일 두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이후 김우진은 윤심덕과 1926년 현해탄에서 새벽 4시경 동반 자살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당시 언론은 '유서를 남기고는 두 사람이 껴안고 바다에 뛰어내렸다'라고 대서특필했지만 유서는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해탄 위 연락 선서 사라졌지만 두 사람이 자살했다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도 없었으며,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탓에 윤심덕 김우진이 사라진 후 온갖 소문이 나돌았으며, 끊임없는 생존설이 제기됐습니다.

두 사람의 불륜 관계가 밝혀진 상황에서 사랑을 이루기 위해 죽음을 가장하고 외국으로 도망갔다는 소문부터 "동반자 살인 척 위장한 것이 아니냐"  "중국인으로 신분 위장해서 살고 있다"는 등 말들이 돌기도 했습니다.

1931년 이탈리아에서 잡화점을 하는 동양인 부부가 있는데, 이들이 김우진 윤심덕이라며, "이탈리아에서 악기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소문은 간판 명부터 구체적인 지명이 언급되기 시작하자 김우진 동생은 총독부를 통해 주이탈리아 일본대사관에 확인을 요청했지만 '로마에는 그런 사람이 없으며 앞으로도 찾아보겠다'는 통보를 받았고, 1934년에는 김옥균의 손자라고 칭하는 이가 나타나 로마에서 악기상을 하는 김우진 윤심덕 부부를 봤다는 이야기가 떠돌아 김우진 동생은 총독부에 확인을 요청했으나 김옥균 손자라 자칭하는 이가 거짓말을 했음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녀의 생과 사랑이 자살로 끝났다고 여겨지며, 그 생의 마감에 '사의 찬미'라는 노래를 남겼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도 신문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윤심덕의 음반을 10만 장이나 팔리게 했던 사건인 만큼, 사실 여부를 떠나서 지금에 이르러서도 윤심덕과 김우진의 사랑, 그리고 동반 자살에 대해 '사고설' '타살설' '계획 살인설' 등이 나올 정도로 오랜 시간 화제였습니다. 

'사의 찬미'는 원래 예정에 없었던 곡인데 일본에서 윤심덕이 김우진을 만나고 온 후 한곡을 더 넣고 싶다며 윤심덕이 직접 작사했고 루마니아의 음악가 이오시프 이바노비치가 작곡한 '다뉴브 강의 잔물결'을 원곡으로 하여 편곡되고 가사가 붙여진 번안곡으로 녹음을 끝낸 후 윤심덕은 펑펑 울었다고 전해졌습니다.

 

 

녹음 당시 피아노 반주를 하였던 그녀의 동생은 '갑자기 추가된 곡이고 왜 그 곡이 타이틀곡이 되었는지 모르겠다.'라는 식으로 부정한 바 있습니다.

이때 김우진과 윤심덕이 만나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 

 

 

죽음을 결심하며 가사를 써내려간듯한 내용으로 윤심덕이 직접 쓴 '사의찬미' 가사는 너무 슬픕니다. 

 

 

'사의 찬미' 가사

 

1절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이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러 가느냐

2절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위에 춤추는 자로다

3절

허영에 빠져 날뛰는 인생아
너 속였음을 네가 아느냐
세상의 것은 너에게 허무니
너 죽은 후엔 모두 다 없도다

후렴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밝혀진 사실

 

8월 3일 김우진과 윤심덕이 일본에서 같은 배를 탔다

8월 4일 새벽 대마도를 지날 무렵, 선실의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고 사람은 없고 가방만 있었다

이후 승객명부를 대조해서 확인해보니 김우진과 윤심덕은 없었으며, 대신 김수산과 윤수선이라는 남녀가 탄 것으로 명부에 적혀있음.

1926년 8월 4일 이후 윤심덕과 김우진은 사라졌다.

 

이들이 연인관계라고 언급하는 것은 당시 정사 이후 신문에서 보도한 것뿐이었으며, 윤심덕의 경우에는 당시 여러 남성들과 스캔들이 있었고, 스캔론 인해 조선을 떠나 만주로 도피해 숨어 지내던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김우진의 경우에도 윤심덕을 사랑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그의 문학작품을 통해서 이게 윤심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정만 있을 뿐입니다.

윤심덕과 절친한 사이였던 극작가 이서구의 회고에 의하면 윤심덕이 일본으로 음반을 취입하러 갈 때 경성역으로 배웅을 나왔었는데 이때 나누었던 대화가 그때는 몰랐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 의미심장했습니다.

실제로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한 대화였으며, 이서구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농담이었습니다.  

윤심덕: "선물로 뭘 사다 드릴까요?"
이서구: "취입 잘하고 돌아올 때 넥타이나 하나 사서 보내줘요"
윤심덕: "죽어도 사 와요?"
이서구: "그래. 죽으려거든 넥타이나 사서 부치고 죽어요"

이서구가 사달라고 했던 넥타이는 윤심덕이 죽었다는 비보가 들려온 지 며칠 후에 이서구에게 도착했고 이서구는 그 넥타이를 매고 않고 죽을 때까지 간직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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